내 생각이 들리고 보인다면? 이런 생각 한 번씩 해 본 적 있을 거예요. 내 속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들린다면 어떨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여과 없이 보인다는 건 나의 생각과 감정을 숨길 수도 없기에 견디기 힘들고, 상대방의 생각과 마음을 온전히 보는 것 또한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카오스 워킹"은 멀지 않은 미래에 뉴 월드라는 다른 행성에 이주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주인공 토드 휴잇은 자신이 살고 있는 프렌티스 타운이 뉴 월드의 유일한 인간 정착지라 배우고, 모든 여성이 사라진 이유가 뉴 월드의 토착종인 스패클에 의해 살해되었기에 때문에 그들을 죽여야만 하는 존재라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서로의 생각이 들리고 보이는 노이즈가 당연한 일상 속에서 살아오던 토드는 뉴 월드에 추락한 노이즈가 없는 신비로운 소녀 바이올라를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프렌티스 타운의 시장인 데이비드가 바이올라를 위협하며 의문스러운 상황에 놓이자,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프렌티스 타운을 탈출하여 다른 정착지로 도망칩니다. 토드와 바이올라를 잡기 위해 프렌티스 타운의 시장 데이비드 무리의 추격전이 시작되며, 비밀이 서서히 밝혀지죠.
주인공 토드가 사는 프렌티스 타운은 철저한 계급 사회였습니다. 그곳에서 힘 있는 자는 노이즈를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노출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상상을 환영으로 만들어 착시를 일으키는 등 노이즈를 잘 다루는 자였습니다. 프렌티스 타운의 데이비드 시장은 노이즈를 조절하는 능력으로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였습니다. 마을은 잘 유지되는 듯 보였지만, 실상은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이고 잔인한 짓을 벌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진실을 감추고 자신들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끊임없이 다른 세상과 단절한 채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이 겁나 우주선에 연락하려는 바이올라를 뒤쫓습니다.
바이올라는 우주선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그녀는 비, 강아지, 나무 등이 무엇인지 배웠지만, 뉴 월드에서 모두 처음 경험합니다. 땅과 바람, 하늘 등 자연에 대한 지식은 있지만 직접 보지 못한 채 평생 우주선에서 살았다면, 뉴 월드에 도착하기 전 느낀 감정은 설렘 그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닥친 것은 노이즈로 다른 사람의 생각이 들리고 보이며, 자신의 안전이 위협당하게 된 현실이었습니다. 꿈꾸던 세상을 찾아왔지만, 사람들의 이기심이 가득한 의문스러운 이 곳을 보았을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반면 토드는 프렌티스 타운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실과 데이비드 시장에게 들은 내용만이 사실이라고 믿은 채 살았습니다. 하지만 데이비드 시장과 목사는 토드에게 진실을 알려 주지도 않았고, 자신들에게 반항하게 될까 두려워 글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단지 자신들이 통제하기 쉽게 이념을 주입할 뿐이었죠.
영화의 후반부에 데이비드 시장과 목사 모두 자신들이 과거에 저지른 일에 대한 죄책감으로 죽습니다. 목사는 자신이 저지른 과거를 바이올라가 자신을 죽임으로써 속죄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사로잡혀 그녀를 뒤쫓았던 것이었습니다. 데이비드 시장은 바이올라가 우주선에 연락하여 2차 이주민이 오게 되면 지금까지 자신이 일궜던 모든 것을 잃는다는 불안과, 자신의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저지른 과거의 만행을 밝히고 싶지 않아서 그녀가 연락하는 것을 막고자 뒤쫓았던 것이었죠. 하지만 데이비드 시장은 토드가 노이즈로 보여 준 자신이 죽인 그녀들의 환영을 보면서 괴로워했습니다. 그들에게 행한 무자비한 학살에 죄책감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카오스 워킹"은 멀지 않은 미래를 가정하여 그려낸 영화지만, 과거에 일어났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역사 속에서 보았던 이기적이고 잔인했던 인간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중 몇 가지를 생각해 보면, 첫 번째는 프렌티스 타운의 추악한 진실을 알았을 때였습니다. 프렌티스 타운의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힘을 군림하고 결집시키기 위해 '노이즈가 없는 여자들은 믿지 못하는 존재'라고 낙인 시켜 남자들을 선동해 모든 여자들을 죽였습니다. 이 학살은 기독교를 절대화하여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행되었던 광신도적인 중세 시대의 마녀재판과 비슷했습니다. 전쟁과 기근, 전염병 등이 휩쓸었던 불행에서 죄를 뒤집어 씌울 희생양이 필요했고, 힘없는 자들을 마법사나 마녀로 몰아 고문을 하고 처형을 시켰죠. 영화에서도 이런 광신도적인 현상을 자행하면서 기득권층은 공포심을 자극하여 사람들을 발아래 두려고 했고, 불행의 탓을 만들어 공동체를 응집시키려 했던 것이었죠.
두 번째는 토드가 글을 배우지 못하게 만든 상황이었습니다. 글을 가르쳐 주지도 않고 마을의 모든 책을 불태웠다는 건, 지식을 얻어 주체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게 억압하는 것이었죠. 그 모습에서 조선시대 양반들이 한글의 사용을 반대하며 배척하고, 한자의 사용을 고수했던 과거가 보였습니다. 특권 세력이었던 양반 사대부들은 항구적인 권력의 독점과 유지가 필요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백성들은 계속 우매해야 했고, 자신들의 우월성이 강조될 수단으로 한자가 필요했던 것이죠. 백성들이 글을 배우면 어리석은 생각을 해 자신들의 권력을 위협할 수 있다고 느꼈던 조선 사대부들의 모습이 영화 속 상황과 비슷하게 느껴졌고, 권력을 독점하고자 하는 기득권층의 욕심이 보였습니다.
마지막은 스패클을 죽이려고 하는 토드에게 바이올라가 애초에 우리가 외계인이 아니냐고 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바이올라가 '우리가 그들이 살고 있는 행성에 온 거잖아. 그러니 우리가 외계인이지.'라고 말했던 게, 우리가 다른 이에게는 착취자일 수 있으니 편협한 생각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이 내용에서는 과거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건너온 이주민들과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의 갈등이 떠올랐습니다. 조상 대대로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한순간에 땅을 잃고, 노예가 되었으며, 잔인한 대학살에 희생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주민들은 인디언들을 교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기독교를 강제로 전파시키고 식민지화하여 지배했습니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더 우월하다는 자만심으로 문화를 존중할 줄 몰랐고,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전쟁을 벌였던 그 참혹한 과거를 영화는 비슷하게 묘사했습니다.
"카오스 워킹"을 사전 지식 없이 보러 갔기에, 영화를 다 본 뒤 몇 가지 의문점과 궁금증이 생겨 찾아보니 원작 소설이 있었습니다. 미국-영국 소설가 패트릭 네스가 쓴 3부작 시리즈의 SF 소설로, 이번 "카오스 워킹"은 시리즈의 처음이자 세계관을 설명하는 시작 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화와 소설의 제목이 "카오스 워킹"인 이유는 소설 속 문장으로 설명되는 것 같았어요. "The Noise is a man unfiltered, and without a filter, a man is just chaos walking." 노이즈를 가진 사람은 여과되지 않은 사람이고, 필터가 없는 사람은 단지 혼돈을 걷는다는 것, 수많은 생각들이 들리고 보인다면 저 또한 혼돈 속에 걷고 있겠죠?
1. 프렌티스 타운의 남자들은 다들 그 비밀을 어떻게 감췄을까요?
2. 2차 이주민들은 노이즈로 겪게 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3. 스패클에 대한 밝혀지지 않은 진실은 무엇일까요?
4. 헤이븐이라는 정착지는 어떤 곳일까요?
좀 더 자세한 내용이 있는 소설을 읽으면, 이런 의문점과 궁금증이 더 빨리 해결되겠죠? 소설의 "카오스 워킹"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돼서, 조만간 읽어봐야겠어요.
토드는 생각이 노출되고 바이올라는 생각이 보이지 않음에도 그들은 서로를 믿고 위로하는 친구가 됩니다. 트렌티스 타운 외의 다른 정착지에서 남녀가 함께 살아가는 걸 보여주면서, 서로를 믿는 진실된 관계라면 서로가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영화에서 먼저 보여준 게 아닐까도 싶네요.
신선한 소재와 박진감 넘치는 전개로, 영화 시간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카오스 워킹"은 영화관에서 봐야 더 몰입도가 높아질 거 같아요. 영화관에서 즐겁게 관람하세요!😉
내 영화 별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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