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me back... Come back to me. "
- 어톤먼트 中
고등학교 때 영화 "어톤먼트"를 처음 본 후 느꼈던 그때의 감정들은 시간이 흘러 지금도 영화 포스터만 봐도 떠오를 만큼 강렬했습니다. 아름다웠으나 슬펐고 안타까웠고 화가 났던 복잡한 마음들이 휘몰아치던 그때의 감정들을요. 어떤 감정들을 느꼈었는지 알기에 영화를 다시 보기가 망설여졌습니다. 주인공 로비와 세실리아의 애절함과 분노, 그리고 브리오니의 속죄에 대한 마음이 복잡하게 뒤엉켜 가슴이 답답했기 때문이었죠. 어렵게 다시 본 영화 "어톤먼트"는 어렸을 적 보았던 "어톤먼트"와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복잡한 주인공들의 감정이, 감독과 배우들이 보여주고 싶었던 그 의미들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보였습니다. 대사뿐만 아니라, 그들의 눈빛을 통해, 시선을 통해, 그리고 손짓을 통해서 말입니다. 눈빛으로 서로에게 보내는 감정과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표현되어 너무 슬펐습니다. 로비와 세실리아는 그가 잘못 전달한 편지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애써 다 전하지 못한 마음을 묻어둔 채 속절없이 이별하고 말았습니다. 브리오니의 잘못된 증언과 딸이 절대 거짓 증언을 할 리가 없다는 엄마의 믿음, 기득권층의 말만을 믿은 경찰의 차별로 로비는 그렇게 죄인이 되었습니다.
브리오니의 상상 속에 로비가 퍼붓던 말이 생각이 납니다. "내가 받은 교육에도 불구하고 너와 네 가족 모두에게 난 하인이나 마찬가지였어. 언제까지나 믿을 수 없는! 널 필두로 모두 합심해서 나를 늑대 소굴에 던져 넣었어!" 그가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건, 평생을 봐왔던 사람들이 아이의 증언 한 마디에 당연하다는 듯 범인으로 지목되었다는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아무리 세실리아 가족과 잘 지내도, 친구처럼 어울린다고 해도, 공부를 잘해도, 세실리아의 가족에겐 하인의 아들, 남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아니 남보다 아랫사람이었죠.
로비는 지옥 같은 교도소, 전쟁에서 하나만을 생각했습니다. 세실리아에게 돌아가겠다는 그 마음 하나만을 간직한 채 말이죠. 그가 잡혀갈 때부터 그에게 끊임없이 읊조렸고, 그에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걸 그녀는 말해주고 싶었나 봅니다. "Come back. Come back to me." 나에게 돌아오라는 말이 너무나 애절하고 가슴 아팠습니다. 집으로, 일상으로, 자신에게로, 그리고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어쩔 줄 몰라하는 그를 심연에서 꺼내는 말로, 세실리아는 로비에게 애타게 말했습니다. 그가 살아가야 할 이유, 그걸 생각하게 만드는 그녀의 말이었죠. 영화에서 그녀가 낮게 이 말을 읊조릴 때마다 로비의 억울함이, 그들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사랑하는 이를 지옥으로 내몬 이들이 자신의 가족이란 사실에 치가 떨리는 세실리아의 슬픔이 떠올랐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를 위해 살기로 다짐하고, 서로에게 돌아가기를 진심으로 원했습니다. 브리오니가 자신이 마지막으로 쓴 소설 <속죄>에서 사실과 달리, 로비와 세실리아에게 용서받지 못한 죄에 대해 사죄했고 그들은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고 적었습니다. 그렇게 적었던 건 그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간절했는지 브리오니가 이해했기 때문이었겠지요. 용서받지 못할 거짓말로 그들의 사랑이 시작하기도 전에 깨졌고, 그들의 인생 또한 망가졌습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땐, 브리오니가 너무 싫었습니다. 자신의 영특함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 안달 난 어린아이의 거짓말과, 그로 인한 파멸만을 봤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본 브리오니는 사랑을 몰랐고, 자신의 생각만 맞을 거란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언니를 자신이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아이였을 뿐이었습니다. 브리오니는 자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어린아이의 치기와 뿌듯함으로, 그것이 어떤 거짓말이고 파장을 가져올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브리오니에게 점점 옥죄여 왔겠죠. 자신의 잘못으로 뺏긴 로비의 삶, 로비와 세실리아의 사랑, 그리고 그날의 진실 말입니다.
브리오니는 평생 용서받지 못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옥죄여 살았을 것 같습니다. 그녀의 행동은 분명 죄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죄를 완성시킨 건, 섣불리 믿은 엄마와 경찰, 자신의 죄를 뒤집어 씌운 폴 마셜, 그리고 피해자임에도 사실을 말하지 않은 롤라였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아무도 속죄하지 않았습니다. 그 날의 진실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믿고 싶은 대로 믿었던 것입니다. 피해자임에도 롤라는 폴 마셜과 결혼을 했고, 결혼식에서 브리오니를 보고 질겁했던 찰나의 순간에서 그들은 그날의 진실에서 가장 큰 범인이었다고 느꼈습니다. 속죄가 필요한 건 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브리오니가 말했던 찰나의 거짓말로 변해버린 로비와 세실리아의 삶이 너무나 안쓰러웠습니다 미안함, 분노, 사랑, 애틋함, 절망의 모든 감정들이 눈빛으로 절실이 느껴졌습니다. 만약에 브리오니가 분수에서 로비와 세실리아가 있었던 순간을 보지 않았더라면, 로비가 세실리아에게 보낸 편지를 읽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있었던 서재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만약에'라는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습니다. 만약에 그들의 사랑이 이어졌더라면…
영화는 로비의 체포 전과 후로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나른한 여름밤의 꿈속에 있는 듯한 세실리아의 저택은 아름답고 찬란했습니다. 하지만 로비의 전쟁터와 세실리아의 현실은 차갑고 쓸쓸해 보였습니다. 삶과 죽음, 낮과 밤, 밝음과 어둠, 희망과 절망이 대비되는 듯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그날 이후로 절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나요. 그녀가 계속 말했던 "Come back. Come back to me."는 다시 그들의 꿈같은 공간으로 돌아가길 희망했던 간절한 주문처럼 들립니다.
또, 영화 "어톤먼트"에서 본 덩케르크 철수 작전은 영화 "덩케르크"와 다르게 보였습니다. "덩케르크"는 절망 속에 희망, 그럼에도 서로 도와야 하는 인간의 선함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어톤먼트"는 최소한의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모습을 본 듯했습니다.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마시고, 실성한 것처럼 웃으며 놀이기구를 타고, 멍하니 바다에 널브러져 앉아있는 모습들. 희망이 사라지고 지옥 같은 해변가를 보여주며, 로비가 빼앗긴 세실리아와의 추억이 있는 공간이, 그리고 세실리아에게 돌아갈 곳과 대비되며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그가 소망했으나 이루지 못했던 그녀에게 돌아가는 길은, 그가 있던 현실들로 암묵적으로 보여주려 했던 걸까요.
영화를 다 본 후, 속죄라는 말이 무섭게 다가왔습니다. 용서를 해도 과연 죄가 면죄되는 것일까 싶습니다. 그리고 브리오니가 행했던 일들이 과연 속죄받을 수 있는 일인가 생각 들기도 했어요. 그녀는 평생 자신이 만든 지옥 속에 갇혀 속죄하며, 자신의 죄를 곱씹고 곱씹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만든 자신의 형벌로, 과연 로비와 세실리아에게 속죄받을 수 있을까요? 나이가 든 브리오니의 눈에 비친 슬픔과 미안함이 그녀가 평생 자신의 죄로 고통받았음을 느꼈지만, 저에겐 아직 브리오니의 속죄에 의문이 남습니다.
찰나의 아름다운 꿈같은 순간을 끝으로 이별했던 세실리아와 로비의 사랑이 끝이 아니었음을, 브리오니의 소설 속 결말처럼 둘이 서로에게 돌아갔음을 바라고 또 바라봅니다.
내 영화 별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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