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use I wanted you to know. "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中
퀴어 영화. 이렇게 정의된 장르는 제게 장벽이 있었습니다. 그건 아마 저의 사랑에 대한 편견과 낮은 이해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제가 배운 세상에서 사랑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좋아하는 것, 남녀만이 가능해야 했던 거였죠. 하지만 남녀 간의 사랑도, 그 외의 다른 사랑도 그저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의 일부분만을 보고 살았다는 게,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있던 저에게 부끄러움이 들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처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았을 땐, 둘의 사랑이 남들에게 들킬까 봐 긴장하며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올리버와 엘리오의 사랑을 잘 보지 못했습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올리버가 떠나고 슬퍼하던 엘리오의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사랑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그들의 사랑을 이상하다고 치부하는 내 마음이 부끄러운 것이라고 말이죠. 그리고 다시 찬찬히 영화를 보았습니다. 올리버와 엘리오의 사랑을, 누가 누굴 좋아하고,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고, 무슨 눈빛으로 바라보는지를… 그들은 그저 서로에게 빠져들었던 것이었습니다.
먼 옛날에는 환경과 가치관에 따라 동성애의 인식이 달랐습니다. 동성애의 인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졌던 것이었죠. 고대 그리스 시대 동성 간의 사랑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신성한 권리이자 진리를 나누는 지혜로움의 상징으로 사회적 존경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플라톤의 <향연>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아기를 낳고 싶은가? 아내에게로 가라. 여자와 자고 싶은가? 노예나 창녀에게로 가라.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은가? 미소년에게로 가라."는 글만 봐도 이 당시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았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로마시대에는 동성애와 이성애를 동등하게 취급했습니다. 동성애는 상류층의 문화로서 성적인 쾌락을 강조했고, 동성 간의 결혼도 법적으로 동등하게 인정받았습니다. 그리고 중세와 봉건시대까지도 동성애는 받아들여졌습니다. 영주의 권력이 컸고 기독교의 영향력이 미미했기 때문에, 교회에서도 동성애를 용인했습니다.
11~12세기에 이르러 점점 기독교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교회에서 동성애를 죄악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세기 동안 동성애를 비인간적인 행위이자 죄악으로 규정하고 금지하였습니다. 19세기 말에는 정신의학에서 동성애를 병리화하여 동성애자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로 인식시키기도 했죠.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동성애자들도 학살하며 그들을 탄압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동성애에 대한 억압과 탄압에 맞서 적극적인 인권운동을 하며, 동성애의 인식 변화를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이블린 후커의 동성애-이성애 연구로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동성애를 정신 질환에서 제외하였고, 그 후 정신의학에서는 동성애를 질병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1990년 WHO의 국제질병분류기호에서 동성애는 삭제되었고, 2015년 미국연방대법원이 동성 결혼은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리며 미국 전역에 동성 결혼이 법적으로 허용되었습니다.
이처럼 서양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법률과 인식이 하나씩 변화하며, 개인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바뀌고 있습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동성애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인식에서 동성애자를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한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올리버와 엘리오의 사랑을 이상하다 여겼던 자체가 잘못이었던 거지요.
그러나 둘만이 떠난 여행의 마지막 날 새벽, 올리버가 잠들어 있는 엘리오를 바라보며 보여준 감정은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는 엘리오와 함께하면 겪게 될 그 시절의 냉대와 차별을 알고 있었던 것이죠. 자신의 사랑을 다른 이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두려움, 그들의 사랑으로 엘리오와 자신이 무너질 수 있을 거라는 절망을 느꼈던 걸까요? 올리버의 찰나의 표정을 본 후, 그들의 사랑에서 그가 먼저 도망칠 것임을 어렴풋이 알았습니다. 올리버의 선택이 비겁하다고 생각할 수 없는 건, 그의 심정이 어떤 건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이탈리아의 한가롭고 조용한 마을을 배경으로 합니다. 뜨거운 한 여름의 햇살, 그늘 아래 시원한 바람, 그리고 평화로운 집안의 풍경. 모든 것들이 늘어진 듯 나른한 그곳이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아름다운 풍경 속 올리버와 엘리오의 사랑은 아련한 추억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에 새겨진 그들이 서로를 사랑했던 잔상들은 계속해서 사랑의 의미를 곱씹게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을 말이죠.
내 영화 별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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