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괜찮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다 잘 될 거예요. "
- 미나리 中
동생은 영화에 대해 인색한 편입니다. 며칠 전 영화 "미나리"를 보고 와서는 좋았다며 추천해 주었습니다. 세계 영화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수상의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는 것,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영화라는 마케팅보다 제게 주변인의 감상평이 더 와 닿았나 봅니다.
영화 "미나리"는 잔잔했습니다. KBS <인간극장>처럼 주변의 평범한 가족의 일상을 찍고, 전 그들의 하루를 엿보는 느낌이었죠. 영화는 가족을 보여줍니다. 너무나 평범한 가족, 가족을 위해 희생했고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 옆에서 지켜보는 게 힘들어 점점 지쳐가는 어머니, 부부 싸움에 눈치 보는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먼 타국으로 온 할머니까지.
순자 할머니는 고스톱을 좋아하고, 아무렇게나 쭈그려 앉아 TV를 보고, 구부정하게 걸어 다닙니다. 그 모습이 초라해 보였고, 제 외할머니가 생각이 났습니다. 저도 데이비드처럼 할머니에게 툴툴거렸던 순간이 있었죠. 할머니가 초라해 보였던 게 미웠던 건, 제가 할머니를 사랑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할머니에게 무뚝뚝한 모습을 보이는 앤의 모습에서 저를 느꼈던 걸까요? 전 앤이 왜 좀 더 할머니께 상냥하게 대하지 않는지 궁금했습니다. 그 이면에 담긴 의문은 '왜 나는 할머니에게 무뚝뚝하게 대했을까?'였던 거죠. 어른이 되어서도 사랑한단 표현을 하지 못했습니다. 사랑이 영원할 줄 알았고, 그때가 아니어도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표현하지 않아도 아실 거라 여겼습니다.
저에겐 외할머니의 사랑을 느꼈던 소소한 기억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어릴 적 외할머니가 운영하던 시장 안 칼국수집에서의 기억입니다. 작은 식당 안에서 할머니는 칼국수 면을 썰고, 육수를 만들고, 김밥을 말았죠. 그 식당 한 켠에서 저는 일하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종종 앉아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손녀에게 김밥 한 입, 국물 한 입을 넣어주곤 잘 먹는지 확인했습니다. 따뜻한 공간, 제가 소중하다고 느꼈던 그 순간을 어린 아이였을 때 어렴풋이 느낀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할머니 손을 잡고 시장에서 장을 보던 기억 속에 있습니다. 할머니 집에 놀러 갔다 동네 시장에서 장을 보고는 할머니는 집에 가져가서 구워 먹으라고 가자미 한 소쿠리를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제가 어떤 생선을 좋아하는지 몇 번이나 물어보고는 집에서 어머니한테 구워 달라고 해서 맛있게 먹으라며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 순간 제가 사랑받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이 기억 때문인지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생선은 가자미 구이입니다.
이런 사랑을 정이삭 감독님이 영화를 통해 관객 한 명 한 명의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고 싶었다고 생각합니다. 윤여정 배우님을 보면서, 외할머니가 많이 떠올랐습니다. 나이가 들어 점점 초라해지는 그 모습에도, 제 외할머니이기에 좋았습니다. 내 어릴 적 사랑을 주었던 사람, 사랑받았다는 느낌을 평생 기억하게 해주는 사람이었죠.
영화의 결말은 제게 물음표로 끝나지만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답니다.'라는 동화 같은 결말이 아니라 좋았습니다. 주저앉고 서로에게 상처가 되어도 가족이기에 함께 이겨낼 거라는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느꼈습니다. 영화에서 할머니는 부부가 싸우는 게 자기 탓, 뇌졸중으로 자신이 쓰러진 게 짐이 되는 것이라 생각해 죄스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창고를 청소하다가 화재가 났죠. 그걸 어찌 화를 낼 수 있을까요.
영화 속 순자 할머니처럼 나이가 들면 자식에게 짐이 된다고 느끼는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밀려나는데 대한 공포와 자신이 무지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는 것들이 주변에 너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키오스크, QR 체크인, 너무 작은 글씨로 이루어진 메뉴판 등 말이죠. 빠르고 편하고 예쁜 것도 좋지만, 함께 가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짐이 되는 존재라고 느끼는 사회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내 영화 별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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