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02 (수)
“지옥”과 “돈 룩 업”을 보았다. 각기 다른 인간의 불행을 보여준 드라마와 영화였다. 세상에 갑자기 신의 심판으로 나의 결말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분노, 슬픔의 감정이 휘몰아칠 것 같다. 그리고 계속 나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고 찾아보면서 두려움에 떨며 지내겠지... “돈 룩 업”은 좀 더 현실을 풍자한 영화로, 신랄하게 보여주었다. 세계 종말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악용하는지, 그러한 짓들로 세계가 어떻게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지 말이다.
두 가지의 비극적 결말을 보다 보니 몇 가지 질문이 생겼다.
나의 마지막 순간에는 누구와 있겠는가? 나는 누구와 있기를 원할까? 어떤 순간을 맞이하고 싶을까?...
02. 09 (수)
1. 어제저녁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를 보았다. 사랑에 실패한 순간, 충동적인 결심을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꿈같은 이야기들. 과거의 상처로 마음을 여는 게 어렵던 아만다와 바보 같은 짓인 줄 알지만 헤어 나오지 못한 아이리스가, 서로의 공간에서 위로받고 인생의 다른 친구들을 만나는 과정들이 따뜻하고 즐거웠다. 크리스마스의 우울함을 집 밖으로 떨치고자 무모하지만 재밌는 선택을 했고, 그 선택들이 그녀들을 한 층 성장시켰을 것이다.
나도 이 영화를 보면서 과거에 틀어박혀 현재만 보고, 현재를 바꿔 미래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했다. 옆집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나인데 내가 나를 조연 취급하면서 우울의 늪을 헤맨 건 아닐까라는 생각. 그리고 할아버지는 아이리스에게 조언을 했지만, 반대로 그녀에게도 조언을 받지 않았을까? 아이리스는 칩거를 하며 사람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그에게, 세상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색다른 재미를 다시금 느끼게 해 주었다.
세상을 활기차게 살아갈 힘, 그건 개인의 다짐도 필요하지만 주위의 용기와 응원도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영화를 보며 지금 나에게도 아만다의 용기가, 아이리스의 응원이 필요하지 않나 싶었다. 가만히 있으면 나의 일상이 바뀔 무언가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잔잔하고 재밌게 일깨워줘서 고맙다.
2. 기분이 요 근래 좋지 않았다. 나는 제자리에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저만치 앞서간다는 생각과, 그로 인한 질투와 열등감들이 마구마구 생겨났다. 내가 평생 이런 식으로 살 수도 있겠다는 불안과, 모든 걸 리셋하고 싶다는 자포자기까지 말이다.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이런 말을 해줬다. 내가 나를 가장 1순위를 생각하자는 것. 나는 나를 제일 먼저 좋아하고, 맛있는 것은 나 먼저, 좋은 데도 나 먼저, 좋은 옷도 나 먼저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난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루지 못한 나의 현실에서, 현재의 행복보다 미래를 염려하는 생각들로 살았다. 하지만 현재의 나를 우선하며 지내는 걸 아직 하지 못했다. 올해는 나를 위해 살아보자. 내가 1순위인 삶으로 말이다.
02. 11 (금)
올림픽을 보고 있다. 선수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살면서 저렇게 열심히 살아본 적이 있었을까라고 생각했다. 두려움에 도망가지 않고 맞서 싸우는 것, 목표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 것, 결전의 순간에 엄청난 집중력을 보인 것. 예전에는 운동선수들을 보면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그들이 대단해 보인다. 인내, 대담함, 집중력 등 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깎으며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지 감히 상상이 안 갈 정도이다. 존경스럽다는 말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퇴근 후 저녁에 집에 와 피곤하다고 눕는다. 그리고 아침에도 침대에서 바로 일어나지 않고 뒤척이며 있다가, 시간이 다 되어가서야 몸을 일으킨다. 매일 ‘회사 가기 싫다.’라는 생각을 하며 출근을 한다.
내 인생의 불꽃은 무엇일까? 아니 무엇이었을까? 내가 어느 순간 잃어버린 불꽃이 나를 그저 그런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의 불꽃을 찾는데 더 집중해보자. 불확실한 미래보다 지금의 나를 더 생각하자.
02. 14 (월)
1. 어차피 우리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서로가 보고 싶은 만큼 이해하고, 사랑하고 싶은 만큼만 사랑한다.
그것이 부모와 우리가 원만히 서로를 오래 사랑하는 방법이다.
2. 지난 토요일에는 난생처음 위스키 바에 갔다. 내가 가기에는 너무 진입장벽이 높을 거라 생각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이 혼자 바에 앉아 생각에 잠긴 모습이 그저 부러웠었다. 저런 곳을 안다는 것, 나도 단골집이 있었으면 하는, 그리고 그런 취향을 가지는 여유로움에... 처음이라는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새로운 것을 하는 것, 새로운 곳에 가는 것,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이제 그런 두려움을 좀 줄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새로운 것을 해도 ‘전 잘 모르니 추천 부탁드려요.’라는 열린 마음과 사교성을 키우면서 세상과 친해지고 싶다.
처음 갔던 위스키 바는 너무 좋았고, 좋았다. 여유로운 분위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았던 순간과, 조용히 흐르던 음악 소리와 기분 좋은 사람들의 대화 소리, 향이 좋았던 위스키와, 달그닥거렸던 잔의 모습, 그리고 영화 속 한순간에 들어와 있는 듯한 그 시간의 모든 순간이 좋았다.
처음의 순간이 좋아서 행복하다. 나의 두 번째도 처음만큼 좋았으면 한다.
언젠가 나도 소공녀의 미소처럼, 무라카미 하루키의 주인공들처럼 혼자 바에서 여유롭게 마시고 싶다.
3. 일요일은 관악산 등산을 했다. 가기 직전까지 갈까 말까라는 고민이 많았다. 낯선 사람, 피곤한 날, 귀차니즘까지... 그래도 나와 결심했고, 팀으로 약속한 것이기에 나갔다. 결론은 만족. 혼자였을 때는 가지 않았을 산행을 다녀온 게 좋았다.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나의 몸, 가빠지는 숨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다.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 자연 속에 있는 그 소리까지도... 오랜만에 느끼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나였다. 올라갈 때는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침대에 누워 있고 싶다, 힘들다...’라는 감정이 더 컸다. 정상에 도착하고 나서 숨이 탁 트였다. 내가 무언가 해냈구나, 뿌듯하다! 앞으로 이렇게 누군가를 만나서 함께 하고 싶었던 걸 해보고, 즐겁게 지내봐야겠다.
02. 17 (목)
1. 프랑스 레스토랑에 가고 싶어, 50유로 코스 요리를 언니, 동생과 즐겼다. 코스 요리라기에는 런치로 조금 가벼운 느낌이었지만, 오랜만에 대접받는 느낌의 식당에서의 시간이었다. ‘왜 그때는 즐기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고, 돈이 없었고, 경험이 많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더 많은 걸 보겠지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요즘은 지금 현재의 삶에 집중하자라는 마음이 크다. 내가 미래만을 생각하며 현재에 불안을 키울 때, 다른 사람들은 현재의 하루를 소중히 여겼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앞으로도 지금의 나를 그리워할 순간이 오겠지... 현재의 순간을 즐기고 싶다.
2. 성수 미술관에서 그림 색을 채우는 체험을 했다. 컨버스를 처음 받고 느낀 생각은, ‘아, 어떻게 시작하지.’였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 것은 구글링이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셋이서 느낀 감정은, 우리가 너무 틀에 박혀 있다는 것. 원본과 똑같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 내 생각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을 봐야지 불안이 해소되었다. 취미로 재밌게 하려고 했던 것이 점점 스트레스를 받아하니, 그 어느 것도 즐기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차피 망칠 거 이쁘게 내 맘대로 해보자는 심정으로 했던 덧칠은 나만의 그림으로 완성되었다. 미키마우스를 똑같이 색칠하는 것에 급급했던 나보다, 이 색, 저 색을 섞어보고 칠했던 내가 더 신났었다. 인생이 이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남과 비교하고 비슷하게 노력하며 불행하지 않았었나. 누군가가 정해놓은 틀에서 맞지 않아 헤매고 그것에 스트레스 받아서, 정작 살아있다는 그 자체를 즐기지 못하지 않았었구나 싶었다. 내가 발견한 이 하루의 순간의 감정을 기억해야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인생을 살아도, 멋진 나만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걸.
02. 20 (일)
난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느리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공부를 이해하는 속도도, 친구와 친해지는 과정도, 사춘기가 왔던 시기도 말이다.
갑자기 왜 미루기에서 나의 느림에 대해 생각하게 됐나.
지금 나는 미루고 미루다가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이 많이 드나 보다.
02. 22 (화)
드라마 “한 사람만”을 3일 동안 정주행 했다. 시한부라는 게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산다는 것이 그저 돈을 벌고 남들이 생각하는 멋있는 직업도 갖고 결혼을 하는 그런 계획적인 삶이 아니더라도, 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세연의 삶이 나와 비슷했다. 어쩌면 인숙, 아니면 미도였을지도...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살고 나조차도 다른 길은 두려워했었고, 상처받는 말을 먼저 내뱉고는 내가 더 상처받고 슬퍼했다. 그녀들에게 나는 위로를 받았다. 내가 가진 걱정들이 대단하지도, 대단하지 않지도, 어느 것들에 속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내 고민들이 그녀들의 말에서 위로받았다.
그저 하루를 내 마음대로 잘 살아보자. 아침에 눈을 뜨고 이 하루가 주어짐에 감사하자.
나의 하루가, 한 달 후, 일 년 후가 당연하지 않음을, 그래서 이 하루부터 잘 살아가기를.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
인간은 누구나 죽어요.
언제 죽는다는 걸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일 뿐이에요.
그때까진 잘 살아보기로 해요.
뭔가 무겁다고 생각하면 그냥 놔버려.
막상 놓으면 그 무게를 알게 되는 것 같아.
내가 들고 있던 게 가벼운지, 무거운지.
02. 24 (목)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 굉장히 불안하다. 얼마 전 팟캐스트로 사람마다 빛나는 시기가 있다고 했다. 나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것 같은 그 시기. 오는 걸까? 근데 그 말을 들으니, 조금 위로가 되었다. 나의 반짝이는 시절은 언제일까?
02. 28 (월)
친구와 아차산, 용마산을 등산하러 갔다. 근데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어서 아차산 정상을 가지 못했고, 용마산 정상도 밑에서 멈췄다. 내 고질병 두통이 도져서인지 머리가 너무 아팠고, 걸을 때마다 생리통에 허리가 아파왔다. 혼자였다면 진작 내려갔을만한, 그만큼 포기하고 싶었다. 오늘따라 건강이 안 좋았던 걸까, 체력이 거지 같은 걸까. 올라가면서 나의 몸과 체력이 후회가 되었다. 평소에 운동 좀 할 걸... 근데 난 운동해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겠지. 평소의 나는 너무 귀차니즘이 강하다. 아니면 이것저것 재다가 아무것도 못하는 건 아닐지.
그래도 산책 같은 등산을 2시간 정도 했고, 바람이 많이 불지만 화창했던 2월의 마지막 주말을 마칠 수 있었다. 하산 후 기대하지 않았던, 닭볶음탕도 맛있었고 말이다. 사는 게 이렇게 계획대로 흘러가는 게 아닌 것 같다. 길을 잘 못 들 수도 있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아플 수 있고, 날이 안 좋을 수 있고 말이다.
언제나 100% 좋은 조건이 아닐 수 있지만, 그 자체로 이 시간을 즐기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남 탓을 하고 환경 탓을 하고 그러다가 자기 비하를 하기에는 내가, 나의 시간이 너무 아깝다.
- 2022년 2월의 기록, 끝.
'나의일기 > 달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달일기. 2022년 6월 (0) | 2022.07.09 |
---|---|
나의 달일기. 2022년 5월 (0) | 2022.06.04 |
나의 달일기. 2022년 4월 (0) | 2022.05.06 |
나의 달일기. 2022년 3월 (0) | 2022.05.01 |
나의 달일기. 2022년 1월 (0) | 2022.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