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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생활/영화,드라마

영화 “코다”와 책 "반짝이는 박수 소리", 그리고 부끄러운 나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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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여성은 한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사회의 주류를 이루었던 남성들이 생각하기에 완성된 인간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성들은 자기 삶에서조차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여겼다. 현재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백여 년 전의 여성에 대한 인식은 닮아 있는 것 같다. 한 사람이기 전에, ‘무엇’으로 규정된, 그것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존재하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부끄러움의 의미를 깨달았다. <코다> 속 “루비”와 <반짝이는 박수 소리>의 “이길보라”를 나는 그 사람이기 전에, 코다로서 보고 있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들이 한 사람이기 전에, 장애인과 그의 가족이라고 규정짓고 판단했던 나의 무지함이 부끄럽다.

 

 농인 부모를 둔 청인이기에 그녀들이 겪어야 했던 삶은 버거웠을 것이다. 사회에서 그들에게 대신 짊어지라고 강요했던 수많은 일상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하지만 영화와 책을 다 보고 난 후의 느낀 점은, 그들은 동정 어린 시선보다는 한 사람으로 봐주길 원했다는 것이다. 음악을 사랑하고, 영화를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하는 그 나이대의 한 인간. 나는 사람을 편견 없이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편견으로 보고 있었다. 그것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녀들의 삶을 나는, 나라면 온전히 ‘나’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버거웠고 안쓰러웠던 나의 부모를 뿌리칠 수도, 저버릴 수도 없었던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편견과 차별이 가득한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조금 버거운 사투를 벌였던 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은 안쓰러웠지만 멋있기도 했다.

 

 영화, 소설 전부 장애인 가족에 대한 내용이 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라는 인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들에게서 ‘나’가 만들어지고 삶을 이루고 가치관이 생겨난다. ‘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다가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나’를 이룬 그들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싶음을 깨닫는다. 나는 그런 모든 행동들이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된 듯하다. 한 사람으로서의 “루비”와 “이길보라”, 그들을 만나고 싶다.

 

 

+)

관련 기사를 보다가, 장애를 바라보는 내 시선에 편견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래에 기사 중 일부분을 발췌하여 공유한다.

 

 

동정과 공감은 ‘핸디캡’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진다. 예술가 이길보라에게 “다시 태어나도 농인으로 살고 싶다”는 그의 청각장애인 부모님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당황했다. 고막으로 듣고 입으로 발화하는 것이 ‘최적의 상호작용’이라는 구어주의적 단정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청인의 세계는 너무 시끄럽고 복잡하기에, 고요하고 우아한 수어의 세계에 살고 싶다’는 그들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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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0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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