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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생활/책

연쇄살인범일까, 아니면 또 다른 희생자일까? 소설 잔혹한 어머니의 날 - 넬레 노이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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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괴롭힘을 당한 사람이 남을 괴롭힌다고 했죠.

하지만 고통스러운 유년기가 아이들을 학대하거나 사람을 죽인 데 대한 변명이 되는 건 아니죠!"

 

"변명은 안 됩니다."

차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서 있던 하딩이 말했다.

"하지만 설명은 되죠."

 

 

 소설 "잔혹한 어머니의 날"은 맘몰스하인의 오래된 저택에서 남성 변사체 한 구가 발견되며, 보덴슈타인과 산더 형사를 주축으로 한 K11 강력반 수사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죽은 남성은 개 한 마리와 함께 홀로 살아가던 80대 노인 테오도르 라이펜라트였습니다. 죽은 지 10여 일이 지난 듯한 시신은 이미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고, 노인이 키우던 개 역시 아사 직전인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개집에는 뼈들이 있었는데, 이 뼈들로 인해 단순 고독사 사건으로 치부되어 서류철 속에 묻힐 뻔했던 사건이 본격적으로 수사 대상에 오르게 됩니다. 뼈는 사람의 것이었고, 굶주림에 지친 개가 땅 밑에 유기돼 있던 시신을 파헤친 것이었죠. 수사 결과, 시신들은 모두 여성인 데다 5월 어머니의 날 전후 실종된 것으로 밝혀집니다. 범죄의 주요 내용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그동안 가려져 있던 사실이 밝혀지며 수사팀은 혼란에 빠집니다.

 

 수사팀을 비웃기라도 하듯 중간중간 범인의 독백이 이어집니다. 그는 자신이 희생자와 어떻게 조우했고, 어떻게 접근했으며,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20대 여성 피오나 피셔가 등장합니다. 지난 몇 년간 학업을 포기하고 연인과 헤어져가며 암 투병 중인 어머니를 간병해왔던 그녀는 이제 모친의 임종을 맞게 됐고,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유일한 혈육인 아버지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제껏 자신이 어머니로 알고 보살폈던 사람은 사실 친어머니가 아니었던 것이죠. 지난 20여 년의 세월 동안 가려져 있던 진실을 알기 위해 그녀는 친어머니를 찾아 나섭니다. 이렇게 세 가지 이야기가 교차 서술되는 가운데, 접점들이 하나둘씩 튀어나오며 결말에 이야기는 완벽하게 결합됩니다.

 

 

"그런데도 나중에 어른이 돼서 찾아간 이유가 뭐예요?" 피아가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요." 그녀는 난감한 듯 손을 들어 올리더니 힘없이 떨어뜨렸다. 

 

"나도 그 생각을 여러 번 해봤어요. 어찌 됐든 부모라고는 그 사람들뿐이니까요. 

그리고 계속해서 뭔가 빚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처음 수사팀은 테오도르 라이펜라트와 그의 부인 리타 라이펜라트를 중심으로 사건을 수사하게 되죠. 전쟁 때 전쟁고아들을 맡아 키우던 수녀원이었던 건물을 사들인 라이펜라트 부부는 지난 20여 년간 인근 보육원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입양해 보살펴온 착한 사람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좋아해서 선행을 했던 리타 라이펜라트는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 상까지 받았죠. 하지만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민낯이 드러납니다. 그녀는 정부지원금을 받기 위해 힘없는 아이들을 데려와, 욕조에 처박고 아이스박스에 가두고 우물에 던져 넣고 랩으로 몸을 감싸는 등 가혹한 체벌을 일삼아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를 눈감거나 철저한 방관자가 되었죠. 아이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고, 자신들을 향한 학대에 언제나 두려움에 떨며 그곳에서 살아왔었습니다.

 

 "잔혹한 어머니의 날"을 읽으면서 이런 학대들이 비단 소설 속 내용이 아니라, 요즘 심상치 않게 등장하는 뉴스 속 현실이라는 게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부모의 아동 학대와 보육시설의 아동 폭력, 어린이집 교사의 학대 등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이런 소식들은 사랑받고 커야 할 아이들에게 잔인한 어른들이 너무 많은, 무서운 현실을 체감하게 했습니다. 유아기에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애정을 주는 상대가 방임이나 학대, 폭력을 하더라도 그 사람이 아이에게는 절대적인 존재이기에 사랑받으려고,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범인의 과거에서 현재의 생활방식에 영향을 끼친 특정한 태도 혹은 징후를 찾아내야 합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런 유년기를 경험한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연쇄살인범이 되는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어렸을 때 라이펜라트 부부에게 당한 학대로, 그중 한 명이 살인범이 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하지만 잔혹한 학대의 피해자라 해도 살인의 정당성이 될 수 없다는 형사의 말에, 프로파일러가 했던 대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변명은 되지 않지만, 설명은 된다는 말. 아이는 따뜻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올바른 교육을 받으면서 커야 합니다. 방임과 폭력, 학대는 전 생애를 걸쳐 한 인간에게 큰 트라우마가 되는 것이죠. 소설 속 연쇄살인범의 행동을 절대 이해하거나 동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엄마에게 버림받았지만 가느다란 희망에 매달려 엄마만을 기다렸던 어린 소년이 느꼈을 상실감이, 언제 갑자기 끌려가 맞거나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 갇힐지 모른다는 아이의 끝없을 공포가, 그곳에서라도 버려질까 긴장한 채 살아야 했던 한 인간의 두려움은 슬프게 다가왔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것인지, 환경으로 악해지는 것인지 이 소설로 다시 한번 의문이 들었습니다. 먼 옛날의 학자들이 끊임없이 토론하고 논쟁을 펼쳤던 것처럼, 저 또한 아직 무엇이 맞는지 결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를 이렇게 만든 건, 그의 천성일까요? 그를 버린 엄마에 대한 증오일까요? 아니면 학대와 폭력으로 얼룩졌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일까요? 범인을 찾은 후 홀가분해진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내 소설 별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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