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제국"은 영국 현대미술에 대해 사례 중심으로 소개하는 책입니다. 그중에서 제일 관심 있게 보았던 안토니 곰리에 관한 내용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게이츠헤드에 대한 배경과 지역경제와 예술이 합쳐진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소개, 지역경제를 살리게 된 게이츠헤드 공공미술 프로젝트 중 하나인 <북방의 천사>와 그로 인해 끼친 다양한 영향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영국 북동부의 뉴캐슬은 최초의 기관차 공장이 설립된 전통적인 산업도시로, 노동계급 문화가 강한 이곳에는 지금도 항구, 조선소, 탄광 등 북동부의 주요 산업시설이 모여 있다고 합니다. 뉴캐슬과 타인 강을 사이에 둔 게이츠헤드 또한 각종 소규모 산업체가 발달했었던 산업지구로 인구 20만 명의 소도시입니다. 강 건너 게이츠헤드 쪽을 바라보면 아주 특이한 건축물이 눈에 들어오는데, 북동부 지역의 랜드마크인 세이지 음악 센터와 발틱 현대미술센터입니다.
19세기까지 탄광산업으로 부유한 생활을 누렸지만, 1970년대 말 이후 대처 정부가 생산성이 떨어지는 광산에 대해 폐쇄조치를 내린 이후 실직과 파업이 절정에 이른 ‘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이라는 장기적인 침체에 빠져들었습니다. (※불만의 겨울: 70년대 말 영국 경제가 극도로 어려운 지경에 빠졌을 때 최악의 파업 사태가 일어났고 시민들이 이로 인해 말 못 할 고통을 겪은 데서 유래)
계속된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1990년대에 들어서자, 게이츠헤드 시는 유럽 다른 소도시들의 도시재생 사례를 연구하여 문화와 예술을 통해 경제를 회생시키는 해법을 도입하려고 하였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1990년대 초 도시재생사업과 함께 시작된 공공미술 프로젝트입니다. 게이츠헤드는 시내에 크고 작은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하여 예술적 환경을 조성하면서 서서히 도시의 삶에 미치는 예술의 영향력을 넓혀갔습니다.
영국의 남부와 북부 지방은 역사적으로 상당한 경제 · 정치 · 문화적 불균형을 겪어 왔습니다. 런던을 중심으로 한 남부 지방이 정치적 무게뿐 아니라 재력과 계층적 우위를 바탕으로 문화 · 예술의 발전을 경험한 데 비해, 영국 북부는 중공업을 바탕으로 한 제조업이 사그라들면서 침체기를 겪었었습니다. 이러한 북동부 지역에 부족했던 현대미술 작품들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게 된 곳이 1950년대부터 30여 년간 밀가루 제분소로서 사용된 건물을 개조한 발틱 현대미술센터입니다.
이곳은 런던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 이어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현대미술 전문 갤러리로, 북부의 테이트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테이트 모던: 화력발전소였던 곳을 세계 최대 규모의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음) 두 현대미술관은 밀레니엄 브리지를 통해 강 건너 지역의 인구를 문화예술시설로 유입시키는 구조와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이라는 것, 또한 침체된 산업도시를 문화관광 도시로 전환시킨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는 점이 비슷하게 닮아있죠.
이러한 발틱 현대미술센터를 포함한 게이츠헤드의 문화지구는 게이츠헤드 주민들에게 아주 소중한 자원이 되었습니다. 게이츠헤드의 문화지구는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재생사업’의 모범 사례로 손꼽히며, 장기적 침체 이후 변변한 관광 상품이 없던 소도시에 6000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었고, 고급 호텔, 대형 스포츠센터 등이 들어서면서 문화관광벨트가 조성되어 지역 경제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게이츠헤드가 국제적 주목을 끌게 된 것은 세이지 음악센터나 발틱 현대미술센터 때문만이 아닙니다. 문화예술의 불모지인 이곳에 미술관과 공연장이 거부감 없이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오래전부터 사전작업이 필요했습니다. 대형 문화예술센터 건립에 직접적인 힘을 실어준 프로젝트가 <북방의 천사(Angel of the North)>라는 초대형 조각 작품입니다. <북방의 천사>를 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매년 4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게이츠헤드를 찾는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작품 한 점이 어떻게 영국 북동부 지역 경제발전의 서막을 알린 문화 전령의 역할을 했을까요?
<북방의 천사>의 제작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당시 쇠퇴했던 도시의 넉넉지 못한 자금으로 14억 원 상당의 돈을 투자해 그저 상징물을 만든다는 것을 두고 시민들은 크게 반발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1994년 안토니 곰리가 이 프로젝트를 맡을 작가로 선정되어 기획안을 공개한 직후부터 시작되었고, 곰리의 계획안은 언론뿐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면서 회의적인 시각에 부딪혔습니다. 이러한 난항을 극복하고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하여 게이츠헤드 시와 곰리 작가는 시민들의 반발을 정며으로 타개하고 시민들의 참여로 분쟁을 해결하며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렇다면 "게이츠헤드 시는 왜 이렇게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무리를 해가며 조각상을 세우려 했을까?"라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초부터 시의회를 중심으로 한물간 탄광촌, 경제 순위 전국 35위 도시라는 불명예를 씻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외부로부터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과거 탄광촌의 이미지를 벗고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판단했는데, 이들은 공공미술이 문화적 환경을 조성하여 새로운 도시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은 물론, 변화의 의지와 가능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시화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 프로젝트를 감행한 것입니다. 게이츠헤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수십 건에 달하는 공공미술 조성 사업을 진행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시 당국 내부에서는 천사 프로젝트에 대한 공감대가 쉽게 형성되었습니다. 지역주민의 반대에 부딪혔을 때, 게이츠헤드 시 당국은 포기하지 않고 주민들을 설득하기 시작하였는데 오로지 복권기금 등 외부 자본을 유치해 제작할 것임을 강조하였고, 모든 예산 집행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주민들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곰리 작가 또한 지역주민들이 반대하는 이유에 귀를 기울였는데,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대화를 통해 마음을 열게 했으며, 프로젝트의 상징적 의미와 중요성을 이해시키기 위해 지역 학교의 교장, 미술교사,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가졌습니다. 또한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워크숍을 열고, 작품의 모형과 드로잉 전시 등의 홍보행사를 꾸준히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북방의 천사>가 겪은 산고는 ‘공공미술’은 공공의, 공공에 의한, 공공을 위한 미술이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공공미술은 완성된 작품이기 이전에 지역공동체가 공동의 목적을 향한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담긴 하나의 역사적 내러티브이기 때문입니다. 서서히 주민들 속에서 천사는 거대한 고철덩어리가 아니라, 게이츠헤드의 역사와 이곳 사람들이 살아온 과거의 고단한 삶 그리고 미래의 희망을 전하는 전령으로 새롭게 그려지기 시작하면서 그 속에 지역주민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 되었습니다.
1998년 5월, 우여곡절 끝에 폐광이 묻혀 있는 언덕 위에 <북방의 천사>는 우뚝 세워졌는데요. 게이츠헤드 주민들은 먼발치에서 공사를 지켜보았고, 제막식에서 뉴캐슬 유나이티드 출신의 축구선수 시어러의 등번호 9번을 단 유니폼을 천사에게 입혀주며 대대적인 환영과 사랑의 표시를 하였습니다. 게이츠헤드 주민들이 천사를 사랑하는 이유는 기념비적 규모나 문화적 아이콘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착안에서 완성까지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주민들의 관심과 시간과 노력을 축적해 이루어낸 자신들의 프로젝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지역주민의 동의를 구하고 참여시키는 과정을 통해 ‘우리들의 작품’이라는 의식이 형성되었다는 점이 중요한 핵심입니다.
게이츠헤드 시가 <북방의 천사>를 계기로 문화관광 도시로 도약한 사건은 영국 전체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국도 우리나라처럼 문화예술 시설이 수도 런던에 집중되어 있어 지역 간 불균형이 큰 편이었는데, 북동부 지역에도 미래의 주력산업인 문화관광산업이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면서 다른 경제 낙후 지역에도 자신감과 희망의 메시지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서 있는 고속도로 초입 언덕은 바람이 강하게 붑니다. 하지만 이 조각이 흔들리지 않는 비밀은 깊숙한 곳에 지상으로 드러난 것 이상의 부피와 무게를 지닌 콘크리트 기반이 든든히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게이츠헤드 시 역시 문화예술을 통해 도시재생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기반이 튼튼했기 때문입니다. 대화와 소통을 통해 당국과 주민 사이에 쌓인 신뢰 위에 역사와 현실, 미래의 비전을 아우른 예술적 상상력이 더해져서 만들어진,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습니다.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여 패배의식을 자신감으로 바꾼 것이, <북방의 천사>가 단순한 관광상품에 그치지 않고 희망의 증거물인 것이죠. 경쟁적으로 문화예술시설을 새로 짓고 대형 이벤트 유치에 열을 올리는 현실에서, 과연 '우리의 천사'는 어디에 있을까요?
나의 책 별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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