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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생활/책

현대 사회와 현대인을 통해서 본 인간의 불행, 문명 속의 불만 - 지그문트 프로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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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이트의 "문명 속의 불만"을 읽고 느낀 첫 감정은 ‘어렵다’였습니다. 읽고 또 읽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고, 내가 제대로 그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프로이트의 "문명 속의 불만"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관심이 갖던 몇 가지 부분을 그동안 읽었던 책과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1.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타인에 대한 평가 기준


 뉴스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사건 중 하나는 어떤 이가 다른 이에게 행하는 갑질 사건입니다. 백화점 직원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하는 고객, 경비원을 폭행하는 아파트 주민 등 기본적인 인성에 대해 곱씹게 만드는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이런 사건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혹자는 사회의 기본적인 윤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태도가 현대 사회에 만연해 있는 경쟁의식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성, 판단력, 인성을 잃어가고,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마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도 다른 사람처럼 현대 사회 속 남보다 우월해야 잘 살 수 있다는 무한경쟁과 돈이 최고라는 물질 만능주의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보다 낮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면, 아랫사람이고 함부로 해도 된다는 가치 때문에 막 대했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들의 머릿속에 사로잡혀 있는 생각들을 무의식적으로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 적은 없었나 하고 반성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또한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타인을 그렇게 평가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전에 읽었던 소설, <헤드헌터>의 상황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 책은 살아남기 위해 상대방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정글의 법칙'을 현대 사회에서 엘리트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통해서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소설은 경쟁의식이 사람을 얼마나 망가트릴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죠. 소설이 고립된 공간을 바탕으로 해서 보여준 것뿐이지, 요즘 주위에서 일어나는 실업난으로 인한 자괴감, 상실감,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느끼는 남보다 못하다는 열등감과 경쟁의식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그 뒤의 문장에 “동시대인에게 존경받는 위인들 중에는 그 위대함이 대중의 목표나 이상과는 동떨어진 성질이나 바탕을 두고 있는 경우도 있다.”라고 썼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돈 많고, 성공한 사람을 존경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말처럼 동시대인에게 존경받는 위인들 중에서 우리의 목표인 성공과 부에 뜻을 두지 않는 사람들이 존경을 받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었죠.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 다양하고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대조적인 생각에 대해서 명쾌하게 답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나 또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부와 성공이라는 목표를 뒤쫓는 현대인 중 한 명이지만, 또 다른 나의 생각 속의 목표에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았던 마더 테레사를 존경하고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문명 또한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다른 무엇보다 이렇게 이중적인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상징적인 의미 때문에 프로이트가 시작을 이러한 이야기로 했을 것 같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2. 문명의 발달로 신의 영역까지 도달한 인간


 인간은 처음 지구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고, 아주 나약한 존재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고 있고, 신의 영역까지 도전하고 있죠. 하지만 우리는 지금 행복한 걸까요? 인간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결계 속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더 빨리 가기 위해 교통수단으로 자동차를 만들었지만, 현대인들은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편리함을 느껴 행복해하기보다는 남들보다 조금 더 좋은 차를 소유하려는 열망이 더 강하게 사로잡혀 강한 압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조금 더 빨리 가는 자동차로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지 못한 사람들은 더 빠른 또 다른 교통수단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불만으로 인해서 문명이 발달하게 되면 사람들은 조금 더 풍족하게 살게 돼서 좋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풍족함 속에서 행복감이나 만족을 느낄 수 없는 것은 불행하기 때문에 문명의 발달을 부정적으로, 또한 비극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문명의 발달을 비극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 있는데, 마이클 크라이튼의 <넥스트>가 그것입니다. 이 작품은 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자가 결합된 휴먼지, 인간 지능을 가진 앵무새, 생명복제, 유전자 형광 주입을 통해 광고판이 되어버린 동물, 배아세포를 둘러싼 특허권 분쟁, 유전자 분석에 따른 법적 분쟁 등 많은 에피소드들을 보여줍니다. 여기에서 출발하여 나타날 수 있는 과학적, 윤리적, 제도적 문제들과 현대의 과학 중에서 신의 영역까지 도달한 유전 공학에 대한 문제와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책 속의 실험들은 처음 인간들이 좀 더 문명의 혜택에서 편리함을 느끼고,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시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그 의미가 변질되어 갈등과 혼란이 닥치게 됩니다. 그중에서 유전자 분석에 따른 법적 분쟁은 과학의 발달을 더욱 씁쓸하게 만들었습니다. 유전자 분석으로 그 사람이 알코올 중독자가 될 수 있는지, 사이코패스가 될 수 있는지, 또는 만성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은지 등을 알아내어 그것으로 이혼 소송을 할 때 상대방보다 우위를 차지하여 좀 더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이혼도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끝내는 것인데, 유전자 분석으로 상대방도 몰랐던 자신의 이상한 특성을 알게 되고 그것을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이 돼버린 것이죠. 유전자 분석에서 나타났던 특성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데 그것을 알게 된 그 자신은 강박증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이며, 그것을 알게 된 타인은 그 사람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에피소드를 보면 문명은 발달했지만, 사람의 행복감은 발달한 것이 아니라 좀 더 우울함과 불안감을 주었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과학의 발달은 엄청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미래에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엄청난 과학의 발달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의 발달이 신의 영역에까지 도달하여 그 한계를 벗어난다고 해도, 인간은 신의 영역에까지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이 더 불안과 공포,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하게 될 것이라는 비극적인 생각이 듭니다.

 

 

 

3. 이상향의 세계와 문명이 발달된 사회


 유토피아에 대해 배웠을 때 그런 이상향의 공간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적인 재산은 소유하지 않으며, 모든 동일하게 일을 하는 등 완벽한 사회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이라는 유토피아의 뜻처럼 뜬구름 잡는 이야기이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또 이런 사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사회주의 체제의 나라들이 모두 몰락하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비현실적이라 여겼죠. 이런 사회는 “현재 존재하지 않으며, 과거에도 존재한 적이 없다”는 프로이트의 문장에서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고 느꼈습니다.  유토피아와 같은 완벽한 사회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상향의 사회를 생각하게 되었던 것은 문명의 발달로 인한 사유 재산에 대한 사람들의 욕심, 그로 인한 양극화, 엄청난 경쟁의식과 물질 만능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이런 한 쌍의 개인들로 이루어진 문명 공동체, 즉 리비도적으로 서로에게 만족하고 공동 작업과 공통된 관심이라는 유대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개인들로 이루어진 문명 공동체이다.” 이 문장을 읽고 유토피아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Lois Lowry의 <The Giver>에 나오는 사회가 이와 비슷한 이상향의 공간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는 유토피아나 다른 이상향의 공간을 생각하면서 소설을 썼을지도 모릅니다. 이 책 속의 사회는 문명은 발달했지만, 사람의 개인적인 감정을 지배하는 무서운 사회였습니다. 이 사회는 일정 나이가 되면 그동안의 생활 습관과 행동으로 직업이 정해지고, 또 일정한 기간이 되면 가족이 정해져 자신의 아들과 딸을 사회에서 분배해줍니다.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일정 기간이 되면 주는 똑같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똑같이 생긴 집에서, 일정 시간에 주는 식사를 먹으면서 생활하죠.

 

 책의 초반에는 완벽하고 좋은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부터 해왔던 일은 사회에 속해있던 일원의 성적인 욕망과 감정을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대단히 예의 바르게 상대방에게 행동했고, 완벽한 가정처럼 보이지만 진정한 사랑은 없었습니다. 책의 내용 중에서 아이가 엄마에게 “나를 사랑하나요?”라고 물어봤을 때, 엄마가 그런 쓸데없는 감정은 필요 없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감정을 가지지 않는 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이어지는 끈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단지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아니면 사회에서 정해준 가정의 일원이기 때문에 친절히 대하는 것은 아닌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그 사회 일원이 다른 이에게 사랑의 감정과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시기부터 평생 약을 먹게 해서 그의 성적인 욕망을 억제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임산부라는 직업을 만들어 튼튼하고 건강한 여성들을 최상의 환경에서 아기를 만들게 해서 사회에 지급했습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통제당하는 사회에 대해 무서움과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 사회는 문명이 발달한 미래의 사회가 배경이었습니다. 문명이 발달한 사회로 완벽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은 개인의 감정을 지배하고 억압한 것이었죠. 하지만 좀 더 많은 생각을 하면서 문명이 발달한 사회에서도 책 속의 사회와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좋아해서 알고 지내기도 하지만, 그 사람과의 이해관계 속에서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또는 내가 지내고 있는 회사나 학교에서 만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알고 지내야 해서 관계를 맺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감정 없이 표면적으로 맺는 이 관계는 소설 속 사회에서 맺는 관계와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저도 살면서 사람들과 맺었던 표면적인 관계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명 속의 불만"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그의 글을 읽고 현재 살아가는 문명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생각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문명을 태초로 되돌리자.”라는 그런 주장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문명 속에 사는 현대인들이 발달된 과학을 좀 더 깊이 있는 생각을 갖고 사용하거나, 사람들과의 관계에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더 특별한 의미를 두면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문명 속에서 “불만”을 느끼는 상황이 조금은 줄어들 수도 있고, 문명 속에서 “행복감”을 찾을지도 모르지요.

 

 


나의 책 별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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