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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생활/책

나의 지난 인연들, 피프티 피플 - 정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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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지나간 인연은 몇 명쯤 될까? 수년을 알고 지냈던 사람이 있었고, 몇 시간 잠깐 얘기를 나눈 사이도 있었다. 몇몇 사람들과의 추억이 떠올랐다. 그들이 지금도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문득 내가 모르는 그 사람들의 현재 삶이 궁금해졌다.

 

 어린 시절 난, 서예 학원에 다녔다. 그 시절 산만한 아이들의 집합소라고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서예 학원은 늘 시끌벅적했다. 서예 학원 선생님은 그 당시에도 머리가 희끗희끗했던 할아버지 선생님이셨다. "선생님! 선생님!" 하고 끊임없이 부르고 옆 친구와 장난치는 우리에게,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내면을 단련시키는 방법을 서예로 가르치려고 하셨던 것 같다. 엄했지만 다정하셨던 나의 할아버지 선생님.

 

 선생님은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가 되면, 산타 할아버지로 변신하셨다. 한 달 전부터 학원의 모든 아이의 카드를 직접 만드셔서,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 전날 각자에게 정성스럽게 적은 카드와 함께, 선물을 주셨다. 어렸을 때는 그게 대단한 건 줄 몰랐다. 지금은 궁금해졌다. 선생님은 어떤 마음으로 매년 이런 선물을 준비하셨을까?

 

 내가 서예 선생님을 떠올렸던 건, 얼마 전 집 정리를 하다가 서예 선생님과 찍은 사진과 카드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흐릿했던 선생님의 얼굴을 다시 보니, 기분이 묘했다. 긴 시간 동안 나는 선생님을 잊고 살았었구나. 그리고 선생님이 어린 시절의 나에게 써준 카드를 보면서, 선생님이 응원했던 그런 사람으로 자랐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선생님의 근황을 알아볼 자신은 없다. 조금 두렵다. 선생님이 지금도 누군가의 삶을 응원해 주고 계시길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누군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고 응원했었다는 걸 깨달으니, 내 삶이 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타인의 삶에서 스쳐 지나가는 이름 모를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떠올리는 내가 좋은 사람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를 떠올릴 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 2022. 0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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