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녀의 소설을 읽었을 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울림을 느꼈다. 차가운 듯한 소설 속 미래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시선들에 매료되었다. 미래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이고 낯선 상황에서, 작가가 풀어가는 이야기의 방식이 퍽 마음에 들었다. 모든 이야기가 좋았지만, 특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소설은 2가지 이야기였다.
소설 <스펙트럼>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소설 <스펙트럼>을 읽고 나서는, 마음 한 구석이 시리고 아련해졌다. 생긴 것도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지만,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존재로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리워하고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 이것은 사랑의 형태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개체가 다른 개체로 넘어가지만 그들만의 기록에서, 희진을 돌봐주고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그 받아들임 속에서 그녀는 다르지만 같은 루이를 사랑하게 된다.
그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상황 속에서 그렇게 해야 해서 지켜주고 사랑하게 된 것일까, 아니면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기에 그렇게 대했던 것일까. 말이 통하지 않았기에 답답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손에 쥐고 보았던 데이터 속 결과물이나 말과 글이 아니라, 그들의 눈빛, 행동을 보면서 파악하고 이해하는 과정들 속에서 다정함과 사랑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희진은 평생 그들을 그리워했을지도 모른다. 사랑을 눈으로 보았기에, 몸으로 느꼈기에. 행동의 작은 조각들로 이어 붙인 사랑들을 알았기 때문에 희진은 그들을 보호하고 숨기고 싶었을 것 같다. 그들 존재가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소설 <관내분실>
그리고 <관내분실>을 첫 소절을 읽었을 때는 솔직히 좀 놀랐다. 나의 어머니와 같은 이름, 그리고 사랑하면서 미워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사이. 멀리 벗어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고, 사랑하지만 서로 상처낼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였다. 내게도, 소설 속 주인공에게도. 주인공이 임신을 하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를 처음에는 그저 엄마가 되기에 다시 보고 싶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에 엄마의 책을 찾고 엄마를 바라보며 했던 "당신을 이해해요"라는 말에서, 주인공은 엄마가라는 역할이 아닌 그 사람의 삶을 가엾게 여기며 이해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를 위해 인생을 포기했다는 자책과 그럼에도 나의 인생을 살고 싶다는 딸의 내적 갈등에서 그만 벗어나, 한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들게 한 소설이었다.
책장에 꽂아두고 때때로 읽어보고 싶은 소설집.
사랑을 작가님만의 시선으로 따뜻하게 그려내어, 읽고 난 후에 내 마음속에 잔잔한 감동이 일렁였다.
나의 책 별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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