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이고 나뭇잎이고 다 사람과 똑같아요. 저 나뭇잎도 봄이 되면 피어서 여름 내내 비 맞고 잘 살다가 가을에 서리가 내리면 그만 떨어진단 말이야. "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中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KBS 인간극장에서 2011년 방송되었던 "백발의 연인" 편에 출연했던 조병만 할아버지와 강계열 할머니 부부의 노년의 사랑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76년을 해로한 두 분의 사랑과 이별을 담은 영화는 2013년에 촬영되어서 2014년에 개봉되었고, 480만 명의 관객이 본 역대 다큐멘터리 영화 관객 수 1위 영화입니다.
공무도하가 [公無渡河歌]
公無渡河(공무도하) 님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공경도하)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
墮河而死(타하이사) 물에 빠져 죽었으니,
當奈公何(당내공하) 가신 님을 어이할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영화의 제목은 고조선의 시가인 [공무도하가]의 첫 구절에서 따 왔다고 합니다. [공무도하가]를 알고 계셨다면, 영화의 결말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충 짐작하실 것 같아요. 임을 잃은 슬픔을 노래하는 이 시처럼,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마지막 이별을 준비하는 부부의 모습을 그려냅니다.
영화는 강원도 횡성의 산골마을, 잉꼬부부로 소문난 89세 소녀 감성 강계열 할머니, 98세 로맨티시스트 조병만 할아버지의 평범하지만 사랑스러운 일상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어딜 가든 고운 빛깔의 커플 한복을 입고 두 손을 꼭 잡고 걷는 노부부입니다. 봄에는 꽃을 꺾어 서로의 머리에 꽂아주고, 여름엔 개울가에서 물장구를 치고, 가을엔 낙엽을 던지며 장난을 치고, 겨울에는 눈싸움을 하는 매일이 신혼 같은 백발의 노부부를 다정한 눈길로 따스하게 비춥니다. 서로를 의지하며 살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귀여워하던 강아지 꼬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납니다. 꼬마를 묻고 함께 집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할아버지의 기력은 점점 약해져 가고, 밤새 기침에 시달리는 날이 많아집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수시로 건너던 강을 바라보며 머지않아 다가올 이별을 생각하게 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부러웠던 것은 76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사랑, 요즘 세상에 있어 귀하디 귀한 사랑의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의 야속함에도 서로를 사랑하고 아낄 수 있는 그런 사랑이 부러웠습니다. 이 영화를 보다가 몇 년 전 유럽 여행 중 제 기억이 남은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버스에 내려 손을 잡고 걸어가시던 노부부의 모습이었습니다. 먼저 버스에 내린 할아버지는 뒤따라 내리는 할머니를 기다렸다가 새끼손가락을 내어주셨고, 할머니는 그 손가락을 쥐고 함께 걸어가셨습니다. 말없이 새끼손가락을 잡고 걸어가던 그 모습이 얼마나 평화롭고 행복해 보이던지요. 영화 속 할아버지, 할머니도 언제나 손을 잡고 다니셨습니다. 손에서 느껴지는 서로의 온기가 얼마나 따뜻했을까요. 영화 속 할아버지와 할머니처럼, 여행에서 잠시 마주쳤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처럼, 나이가 들어도 손을 잡고 함께 천천히 걸어가는 그런 사랑이 부러워집니다.
"언제 가장 보고 싶으세요?"
"매 순간 보고 싶지."
할머니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여 찾아보니, 근황 올림픽이라는 유튜버가 올린 5년 만의 할머니 근황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고운 할머니는 환하게 자신의 일상과 진모영 감독님 이야기, 마을회관에서 화투 치는 얘기를 하시다가도, 할아버지 이야기에는 할아버지가 늘 그립다고 울먹이셨습니다. "그저 등 뒤에 있을 것 같은데 밤에 자다가 만져보면 없다."라고, "지금도 돌아가신 게 믿어지지 않는다."라고 눈물을 흘리시는 할머니의 모습에 절절한 그리움이 느껴졌습니다. 할아버지에게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지내시는 할머니가 너무 슬프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시길, 훗날 할아버지와 다시 만나게 됐을 때 서로 정답게 손잡고 도란도란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셨으면 하고 바랍니다.
내 영화 별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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