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유생활/영화,드라마

꼭 듣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I Can Speak) 감상평 (줄거리 有, 위안부 피해 할머니 생각)

728x90

" I am sorry. Is that so hard?

(죄송합니다. 이 한 마디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 "

- 아이 캔 스피크 中

 

 

故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8월14일 국내 '위안부' 생존자 중 최초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하는 모습 

 

 

 8월 14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1991년 8월 14일, 故김학순 할머니께서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날입니다. 그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실에서 김학순 할머니는 대한민국 ‘위안부’ 피해자로는 처음 ‘위안부’의 실상을 증언하였습니다. 일본 정부가 일본군은 군대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발표를 듣고, 이를 바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해 세상에 목소리를 내셨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증언 이후, 용기를 얻은 다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이 증언하기 시작했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인권문제로서 국내외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국가 차원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피해 사실과 관련된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피해자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고 기리기 위해 지정일로 제정하는 것이 논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 증언한 날인 8월 14일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으로 제정되어 국가기념일이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위안부’라는 용어를 쓰는 걸 싫어합니다. 위안이라는 단어조차 피해자분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요. 어떤 단어가 맞는지 찾아보다 여성가족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역사관]에서 명칭 및 성격규정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현재 UN 등 국제사회에서는 성노예(Military Sex Slavery)와 군대성노예제도(Military Sexual Slavery)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일본군 ‘성노예’라는 용어보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용어를 널리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위안부’라는 용어가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기에 적합하지 않지만 동시에 일제가 ‘위안부’라는 용어를 만들어가며 제도화했던 당대의 특수한 분위기를 전달해 준다는 점과, 생존자들이 자신을 ‘성노예’로 부르는 데에 정신적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쓰이고 있는지 알고 나니, 더 숙연해지는 슬픔이 느껴졌습니다.

 

 

2007년 미 하원의회 공개 청문회 당시 모습 (故김군자-이용수-오헤른) / 사진: 연합뉴스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해자 할머니들과 민간단체들은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중 2007년 미국 하원의회 공개 청문회에서 이용수 할머니와 故김군자 할머니는 일본의 만행을 증언하였습니다. 이용수 할머니는 증언에서 "세계 성폭력 만행을 뿌리 뽑기 위해서라도 일본은 반드시 사죄해야 한다."라고 용기 있게 말했습니다. 이후 미 하원은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죄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이는 국제사회가 일본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최초로 공식 인정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 이미지 / 사진: ㈜리틀빅픽처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옥분이라는 할머니를 통해 지극히 일상적인 시선으로 ‘위안부’ 피해자를 조명합니다. 명진구청 민원봉사과에는 모든 공무원이 기피하는 대상이 있는데, ‘도깨비 할매’라 불리는 옥분 할머니입니다.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불법행위에 대해 일일이 민원을 내기 때문이었습니다. 접수한 민원만 8000건에 달해 구청 직원들 사이에서 옥분 할머니는 ‘블랙리스트 1호’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런 구청에 9급 공무원 민재가 전근 오게 됩니다. ‘도깨비 할매’를 전혀 몰랐던 그는 모든 동료가 피하는 옥분 할머니를 원리 원칙에 따라 대하겠다며 그녀와 기싸움을 벌입니다.


 그런 옥분 할머니에게도 한 가지 고민이 있었는데, 오랫동안 공부하는 영어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민재가 원어민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옥분 할머니는 민재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며 따라다니기 시작합니다. 민재는 갖은 핑계를 대며 거부하다가 옥분 할머니가 민재의 동생 영재에게 종종 저녁을 차려줬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민재는 고마움에 옥분 할머니의 영어 선생님이 되어 공부를 도와줍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 이미지 / 사진: ㈜리틀빅픽처스

 

 

 옥분 할머니가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어렸을 때 미국으로 입양 간 남동생과 통화를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민재는 할머니 몰래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지만 할머니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냉랭한 그의 반응에 당황합니다. 그래서 옥분 할머니가 남동생 때문에 상처 받지 않게 하기 위해 민재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더 이상 영어 과외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옥분 할머니가 우연히 구청 직원들이 진행하고 있는 시장 재개발 소송에 대한 진실을 들으면서 민재에게 크게 실망을 하게 됩니다.

 

 옥분 할머니를 이해했던 민재의 동생 영재는 민재에게 화를 냅니다. 할머니가 왜 그렇게 오지랖 넓게 살아왔는지, 왜 시장 바닥을 누비면서 사사건건 참견했는지에 대해서요. 할머니가 가족도 없이 평생 외롭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다고, 그런 할머니 마음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동생의 이야기를 들은 민재는 긴 세월 동안 주변 사람을 위해 민원을 넣은 할머니의 자료를 보며 자신의 행동을 반성합니다. 그리고 민재는 시장 상인들의 시장 재개발 소송 문제를 도와줍니다.

 

 그리고 옥분 할머니는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앞장서 증언해왔던 친구인 정심 할머니가 아파서 나서지 못하자, 정심 할머니를 대신해 미국 하원 의회에서 열리는 공개청문회에서 ‘위안부’의 실상을 증언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자신을 부끄러워했던 엄마 때문에 꼭꼭 숨어 살았던 옥분 할머니는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친구인 정심 할머니를 위해서 세상에 목소리를 내기로 한 것입니다. 옥분 할머니의 내막을 알게 된 민재는 할머니에게 찾아가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할머니는 민재에게 자신의 과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옥분 할머니가 왜 그토록 영어 공부에 목을 맸는지 알려줍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어떠한 왜곡 없이 전달하기 위해서 영어를 잘해야 했던 것이죠.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 이미지 / 사진: ㈜리틀빅픽처스

 

 

 옥분 할머니의 마음을 알게 된 민재는 할머니의 영어 연설 준비를 더욱 적극적으로 돕기 시작합니다. 시장 상인들 또한 할머니에게 용기를 줍니다. 하지만 옥분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 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일본 측에서 증인 자격이 없다고 문제 삼게 됩니다. 민재는 옥분 할머니가 증언을 할 수 있도록 명진구청 직원, 시장 상인들과 함께 할머니 '위안부' 확인 탄원서를 준비합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 측이 옥분 할머니를 증인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자, 민재는 할머니가 꽁꽁 숨겨 놓았던 사진을 들고 워싱턴으로 향합니다.

 

 옥분 할머니는 미국 하원에서 진행된 청문회에서 증언을 하기 위해 단상에 올라갑니다. 단상에 올라 입을 못 떼는 옥분 할머니에게 들려온 “How are you?”라는 민재의 목소리에 긴장이 풀린 옥분 할머니는 자신의 상처를 덤덤히 그리고 당당히 이야기합니다. 자신을 위해,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었던 이들을 위해, 그리고 지금도 비슷한 고통을 겪는 소녀들을 위해 말이죠.

 

 영화의 결말은 계속해서 시장의 '도깨비 할매'로 살아가는 옥분 할머니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증언하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니는 할머니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는 그날까지 옥분 할머니의 증언은 계속되겠죠.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 이미지 / 사진: ㈜리틀빅픽처스

 

 

 영화를 다 보고 여운이 남아 여러 인터뷰를 찾아보았습니다. 그중 영화 제작사로 참여한 강지연 시선 대표님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왜 ‘위안부’ 문제를 다룬 다른 영화들과는 다르게, 거부감 없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피해자로서 할머니의 모습만 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너무 슬프게만 바라보지 말고,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수요집회를 나가서 피해자 할머니들을 뵙고 많은 걸 알게 됐다. 가장 중요한 건 그분들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할머니라는 점이었다. 당당하고 씩씩하고, 또 농담도 잘하시고. 그런데 우리가 그분들을 너무 ‘비극의 역사’ 안에 가둬둔 게 아니었을까. 할머니들이 꾸려온 삶을 상상조차 거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할머니들 모두 여행 다니고 싶어 하시고, 꾸미는 것도 좋아하시고, 또 무엇보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신다. 그분들의 리얼한 모습을 나옥분 캐릭터를 통해 가져와야겠다 싶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 이미지 / 사진: ㈜리틀빅픽처스

 

 

 영화에서 제가 제일 좋아했던 장면은 추석 연휴에 가족이 없어 혼자 쓸쓸하게 라면을 먹고 있던 옥분 할머니에게 민재, 영재 형제가 찾아와 함께 추석 음식을 만들어 먹는 장면이었습니다. 옹기종기 모여서 할머니가 전을 구우면 호 불어 바로 입에 넣는 그 장면이 너무 따스했습니다. 정이 그리웠던 서로에게 따뜻한 가족이 되는 과정을 담은 모습이 너무 뭉클했어요.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내용들을 '위안부' 피해에만 초점을 두지 않아서 감사했습니다. 사람의 상처와 외로움은 서로를 통해 치유를 받을 수 있다는 것, 옥분 할머니와 민재, 영재의 모습에서 그런 것들을 느꼈습니다.

 

 영화를 보고 피해자인 할머니들이 숨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의 사회적 냉대가 너무 마음 아팠습니다. 왜 '위안부' 피해자들이 자신을 부끄럽게 여겨, 떳떳하게 살지 못하고 숨을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그분들의 잘못이 전혀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위안부' 피해 할머니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며, 그들 편에서 함께 일본에게 사과를 받아줄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사과를 받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만 잊으라고 용서하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면 사소한 문제라도 며칠을 속앓이 하거나 화를 내는 게 사람의 마음인데, 그분들에게 과거 일이니 그만 잊으라고 말하는 건 이기적이지 않나요?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을 때까지, 그분들의 마음에 응어리가 풀릴 때까지 우린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막연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웃이 당했던 가슴 아프고 잔인했던 폭력이었으니깐요.

 

 할머니들의 평안을 위해 기도합니다.

 


내 영화 별점은?

 

★★★★★

 

 

아이 캔 스피크

 

아이 캔 스피크

Daum영화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세요!

movie.daum.net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