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서는 한 번만 하면 되니까. 누굴 증오하려면 온종일, 매일, 평생 해야 해. 나쁜 생각들을 계속 떠올리면서. 그게 더 힘들지. "
- 파도가 지나간 자리 中
영화가 개봉하기 전, 곽진언의 “우리 사이에” 뮤직 비디오로 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를 먼저 보았습니다.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함께 사랑스러운 연인의 모습, 그리고 조금은 슬픈 듯한 가사가 마음에 박혔죠. 영화가 개봉하고 처음 본 날은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슬펐습니다. 그 감정을 알아서 넷플릭스에 업로드된 걸 보고도 여러 날 동안 다시 보기가 망설여졌습니다. 주인공 한 명 한 명의 감정에 이입하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해서, 감정이 복잡해질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죠. 다시 본 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슬펐지만 아름다웠고, 차분하지만 열정적인 영화였습니다.
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오스트레일리아 작가 M. L. 스테드먼의 소설 “바다 사이 등대”가 원작입니다. 외딴섬 야누스가 풍기는 적막하고 쓸쓸한 분위기와 1차 세계대전 직후 상실감과 싸워야 했던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의 삶에 대한 섬세한 묘사, 한 남자의 신앙과 같은 사랑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강렬한 이야기로 출간 후 작품성과 대중성을 높게 인정받았습니다. 2013 오스트레일리아 출판상(ABIA) ‘올해의 책’과 ‘올해의 신인 작가’에 선정되었고,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아마존 ‘2012 최고의 역사 소설’에 선정되는 등 전 세계 40여 개국에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소설의 성공에 힘입어 “바다 사이 등대”를 원작으로 한 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가 제작되었습니다. 탄탄한 이야기와 배우들의 진실된 연기, 아름다운 영상 등이 어우러진 영화는 작품성을 인정받아 제73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되었습니다. 영화는 외딴섬의 등대지기와 그의 아내가 2번의 유산 후 운명처럼 파도에 떠내려온 아기를 구출하고 키워가던 중, 몇 년이 지난 후에 친엄마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그들의 행동에 대한 도덕적 딜레마에 직면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의 정신적 충격으로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사람들을 피해 외딴섬 야누스의 등대지기로 지원한 톰은 광활하고 쓸쓸한 바다에 둘러싸인 채 고독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마을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아름다운 여인 이사벨을 만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서로를 사랑하게 된 톰과 이사벨은 결혼을 하고, 오직 둘만의 섬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사벨은 잉태한 생명을 두 번이나 잃게 되고 깊은 슬픔에 잠깁니다. 이사벨은 두 번째 유산 직후 슬픔에 잠긴 채 아이들의 무덤 옆에 누워 있다가, 먼바다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을 듣고는 휩쓸려오는 쪽배를 발견해 바다로 뛰어갑니다. 파도와 함께 떠밀려온 쪽배 안에는 죽은 남자와 갓 태어난 아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톰은 이 일을 규정상 상부에 보고해야 했지만, 이사벨의 간청에 남자를 섬에 묻고 아기를 자신들의 딸로 거두게 되면서 둘만의 비밀이 생깁니다.
가슴으로 품은 딸 루시와 함께 완벽한 가정을 이루며 야누스 섬에서 행복하게 보내던 톰과 이사벨은 루시의 세례를 위해 마을을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톰은 루시를 발견한 날 바다에서 실종된 프랑크와 그의 딸 그레이스 무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해나라는 여자를 우연히 보며, 루시가 해나의 실종된 딸임을 알게 됩니다. 프랑크가 독일인이었다는 것과 1차 세계대전 직후에 해나가 그와 결혼했다는 것, 그러나 프랑크가 독일인이었기 때문에 몇몇의 동네 사람들에게 위협을 받게 되어 어린 딸을 데리고 쪽배를 타고 바다로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톰은 친엄마 해나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지키고 싶은 사랑과 밝혀야만 하는 진실 사이에서 걷잡을 수 없는 갈등에 휩싸이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이사벨에게서 루시를 뺏을 수 없었기에 해나에게 익명으로 남편은 죽었지만 그녀의 딸은 안전하게 사랑받고 보살핌을 잘 받으며 크고 있다고 편지를 보냅니다.
그로부터 4년 후, 루시와 함께 야누스 섬에서 목가적인 삶을 누려온 톰과 이사벨은 톰의 야누스 40주년 행사에 참석한 해나와 그녀의 동생 그웬을 만나게 됩니다. 이사벨 또한 해나가 루시의 친엄마 임을 알게 되죠. 양심에 가책을 느낀 톰은 루시와 함께 배에서 발견된 딸랑이를 해나에게 보내며 루시가 안전하다는 것을 알리지만, 해나는 딸의 행방을 알고 싶어 그것으로 현상금을 걸게 되죠. 그리고 톰의 동료 중 한 명이 현상금 포스터의 딸랑이를 알아채고 경찰에 신고합니다. 톰은 이사벨에게 강요하여 순순히 따르도록 했다고 주장하며 모든 책임을 지려고 했고, 이사벨은 톰이 루시를 내준 것에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격분하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경찰은 톰에게 프랑크를 살인했다는 죄까지 뒤집어 씌웁니다.
루시는 친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만 처음에는 그들을 거부하고 싫어하며 이사벨과 톰을 애타게 찾습니다. 루시의 기억 속에 친엄마가 없었기 때문에, 루시는 그레이스라는 이름을 거부하고 등대로 이사벨과 톰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도망칩니다. 등대를 찾으러 도망간 루시를 수색대가 출동해 구조하여 해나에게 돌아가지만, 이 사건으로 해나는 루시가 자신이 아닌 이사벨의 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해나는 이사벨에게 톰이 프랑크를 죽였다고 증언하면 루시를 이사벨에게 돌려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 말에 갈등하던 이사벨은 톰이 전에 보냈던 편지를 꺼내어 읽습니다. 편지에는 '내 일생의 기회가 이렇게 끝나더라도 가치 있던 삶이었어. 내 삶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당신을 만났고 당신에게 사랑을 받았어.'라는 톰의 절절한 사랑이 느껴지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의 편지를 보고 이사벨은 톰이 자신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함을 깨닫고, 그가 재판을 받기 위해 끌려가려는 찰나 배에 뛰어올라 모든 것을 자백합니다. 해나는 용서는 한 번만 하면 된다는 프랑크의 말을 떠올리며 톰과 이사벨을 선처해 주기로 하며, 그들은 큰 벌을 면하게 됩니다. 그리고 루시는 마침내 친엄마와 외할아버지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외할아버지와 절충안으로 루시 그레이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로 합니다.
시간이 흐른 후, 루시 그레이스는 그녀의 아들 크리스토퍼와 함께 톰을 만나러 옵니다. 그녀는 18년이 넘도록 톰과 이사벨을 만나지 못했는데, 그들이 평생 동안 루시와 접촉하지 않기로 동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루시가 톰을 만났을 때, 이사벨이 최근에 죽었고 여전히 그녀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에 괴로워했다고 말해줍니다. 하지만 톰에게 루시는 야누스 섬에서 자신을 구조하고 잘 보살펴 준 것에 감사하다고 얘기하죠. 톰은 루시가 만나러 왔을 때를 대비해 이사벨이 써 놓았던 편지를 건네줍니다. 편지를 읽고 이사벨의 깊은 사랑을 느낀 루시는 다시 톰의 집에 방문할 수 있는지 묻습니다. 그리고 루시와 톰은 떠나기 전에 포옹하고, 바다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띠는 톰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전형적인 악인을 배제하는 대신에 인간이 마주한 선택과 딜레마에 관해 묻습니다. 이 딜레마로 인해 톰은 수많은 갈등을 겪으며 괴로워합니다. 전쟁에서 상처를 겪고 돌아온 톰이 바라는 건 삶이라고 했습니다. 삶의 방향을 잃고 도망치던 톰에게 가야 할 길을 제시한 이사벨은 세상 어느 것보다 소중한 존재였을 겁니다. 죽음을 더 가깝게 느꼈던 그가 생기로 가득 찬 그녀를 만나 다시 삶의 활기를 느끼면서 그는 두렵지만 삶에 용기를 냈습니다. 그런 톰에게 이사벨은 등대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방향을 잃은 이사벨 앞에 나타난 루시를 놓지 않으려는 그녀를, 잘못된 일임을 알았지만 막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톰과 이사벨이 사는 야누스 섬의 의미처럼, 그들의 선택은 두 개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톰과 이사벨이 루시를 키우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해나는 긴 세월 프랑크와 그의 딸 그레이스의 행방을 모른 채 슬픔 속에 살아왔습니다. 과연 이것이 올바른 선택이었을까요. 해나에게 진실을 숨긴 건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축복 같았던 프랑크, 그레이스와의 짧은 과거 속에 머무르며 늘 그들을 그리워했던 해나에게, 톰과 이사벨은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톰과 이사벨은 해나의 딸 그레이스를 바다에서 구했고, 사랑으로 어여쁘게 키워준 감사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해나도 톰과 이사벨에게 이런 이중적인 감정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해나는 톰과 이사벨을 용서합니다. 프랑크가 보여줬던 용서의 마음을 떠올리면서요.
영화를 통해 톰과 이사벨에게는 사랑하는 마음을, 해나에게는 용서하는 마음을 배웠습니다.
슬프고도 아련한 사랑의 형태를 톰, 이사벨, 그리고 해나, 세 사람의 감정으로 들려주는 이 영화를 보시길 바라요.
내 영화 별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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