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사람들 사이에서 비참해져도 너만 나 알아주면 돼. "
- 파수꾼 中
영화는 한 소년이 죽고, 평소 아들에게 무심했던 소년의 아버지가 아들의 죽음을 뒤쫓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갑작스러운 자살에 혼란스러워하고 뒤늦은 죄책감과 무력함에 시달리다가, 기태의 책상 서랍 안에 보관된 친구들의 사진을 발견합니다. 사진 속 친구인 희준과 동윤을 만나기 위해 학교를 찾아갔지만, 기태의 아버지는 그들을 만나지 못한 채 희준은 전학을 갔고 동윤은 장례식장에 오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기태의 아버지는 뭔가 이상한 사실을 눈치채고 희준을 수소문해 찾아가지만, 희준은 ‘기태와 제일 친했던 것은 동윤’이라고 말하며 자세한 대답을 회피합니다. 결국 아버지의 부탁으로 희준은 동윤을 찾아 나서지만, 학교를 자퇴하고 떠나버린 동윤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 세 친구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과거를 보여줍니다. 서로가 전부였던 기태, 희준, 동윤 세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난 비극이, 기태를 왜 자살하게 만들었는지를요. 미성숙한 소통과 독단적 우정이 가져온 오해와 폭력들은 세 사람의 비극적인 결말이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가슴이 먹먹하고 아프고 슬펐습니다. 얽히고 얽힌 오해 속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친구를 잃게 되었습니다. 기태는 못됐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진심으로 생각하죠. 희준은 기태에게 말했어야 했습니다. 그가 서운했던 것이 무엇이고, 이토록 화가 난 것이 무엇인지를... 동윤은 둘 사이에서 우정을 지키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기태에게 상처를 입혔습니다. 동윤은 ‘아예 넌 사라져야 한다고, 널 친구로 생각한 적 없다.’라고 모진 말을 기태에게 퍼붓죠. 속마음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서로를 얼마나 생각하는지를 모르고 그렇게 우정은 깨져버렸습니다.
“파수꾼”은 제가 알 수 없었던 남학생들 사이의 우정을 볼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그 속의 의미는 굉장히 복잡했지만 말입니다. 파수꾼의 의미를 찾기 위해 검색해 보니 희곡, 이강백의 “파수꾼”이 나왔습니다. 체제와 사회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망루에서 이리떼가 나타났다고 소리치고 양철북을 두드리는 파수꾼들의 이야기와,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아이들에게 폭력적으로 대하는 기태는 어딘지 쓸쓸하게 닮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우연히 읽었던 감독의 인터뷰에서 영화의 제목은 감독이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좋아해서 파수꾼이라는 단어를 가제로 쓰다가 그대로 사용했다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은 열여섯 살의 문제아 홀든 콜필드가 어른들의 세계와 마주하며 청소년들이 겪는 고뇌와 감정적 동요를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키겠다는 결심을 묘사한 작품이죠. 소설은 전 세계적으로 7000만 부가 팔릴 만큼 미국 현대문학의 대표작이지만, 미국 내 가장 많은 기관에서 주인공의 반사회적 행동을 문제 삼아 금서로 지정했을 정도로 논란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홀든은 정신병원에서 지내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홀든은 성장에 실패했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계속 방황합니다. 그의 이상은 온종일 절벽 위에 펼쳐진 너른 호밀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어 했지만요. 기태 또한 홀든과 비슷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홀든은 순수성을 갈망했지만 실패했고, 기태는 우정을 갈망했지만 실패했기 때문이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좌절감을 느껴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기태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나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내 영화 별점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