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는 예약이 너무 빨리 마감되어 못 볼 줄 알았는데, 친구 덕분에 주말 오전의 좋은 시간에 예약할 수 있었다. 든든하게 김밥을 먹고 들어가서 본 전시는, 김밥을 안 먹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생각될 만큼 긴 시간 동안 열심히 집중해서 본 전시였다.
한국과 영국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여 영국 내셔널갤러리에서 소장된 거장들의 명화 52점을 전시한 이번 전시는, 라파엘로, 카라바조, 렘브란트, 고야, 모네, 르누아르, 고갱, 반 고흐 등 서양 미술에서 너무나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작품의 전체를 보는 것도 좋았지만,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나 보이는 그 시대를 표현한 거장들의 시선과 그들의 붓질 하나하나에 담긴 질감과 색의 표현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흥미롭게 구성된 전시 흐름에 따라 대단한 명작들의 설명을 하나하나 읽고 들으니 너무 좋았다. 이번 전시 기획은 유럽 회화사를 그대로 따라가는 전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총 4부의 구성으로 중세 이후 르네상스부터 종교와 신에 머물러 있던 거장의 시선이 어떻게 변화되어, 인상주의 시기까지 닿아가고 있는지를 선보였다.
전시는 세 가지가 마음에 들었다. 하나는 색채의 조화였다. 파란빛, 빨간빛 등 다양한 색감이 시간이 지나도 작품 속 다른 색감들과 조화를 이루어 집중하게 만들었다. 오묘한 색감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나하나의 색감에 시선이 사로잡혀 본 작품이, 화가의 손 끝에서 완성된 그가 하고픈 말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말의 의미를 느끼고 싶었다.
두 번째는 세심한 디테일을 보는 재미였다. 작품의 전체를 보는 것도 좋았지만, 작품 속 인물을 보면서 그들의 옷의 소매나 장신구에 그려진 섬세한 표현과, 거대한 작품 속 작은 인물, 풍경까지 꼼꼼하게 그린 부분들을 보면서 화가의 장인 정신에 경외감이 들었다.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듯, 뚫어져라 작품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그 시간이 좋았다.
마지막은 전시의 흐름이었다. 서양 회화는 학교에서 수업을 들어 익숙하긴 했지만 어렵다고 느끼는 주제였다. 어려운 주제를 어렵지 않게, 흥미롭고 이해하기 쉽게 구성하여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15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유럽 회화를, 시기별로 대표적인 특징에 맞는 제목으로 전시를 설명하여 시기별 특징을 이해할 수 있었다. 1부 “르네상스, 사람 곁으로 온 신”, 2부 “분열된 교회, 서로 다른 길”, 3부 “새로운 시대, 나에 대한 관심”, 4부 “인상주의, 빛나는 순간” 이렇게 4가지 세션으로 나뉜 전시에서 시간의 흐름만 집중해서 본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어떤 것에 더 집중하는지 알 수 있는 과정이었다. 선유이 학예연구사님은 인터뷰에서 “예술은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것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것으로 변화해 왔다. 전시를 보는 과정에서 삶과 예술에 대해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이라고 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생각한 삶과 예술이 담긴 의미를 해석하여 본 전시는 나의 집중력을 높였다.
그저 유명한 전시여서 처음에는 보고 싶었는데, 보고 나오니 보기 잘했다는 생각이 깊게 든 전시. 그 시대를 살았던 화가가 그린 작품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훗날 이 시대를 살았던 화가가 그린 작품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며 어떤 그림들을 남겼을까. 그리고 그 작품을 바라보는 훗날의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 가벼운 마음으로 본 전시는, 깊은 여운을 남긴 전시였다.
오디오 가이드의 끝맺음이 이번 전시에 담긴 의미라고 생각되어 마지막으로 남겨본다.
“예술은 사람을 향합니다.
르네상스시대부터 인상파가 활동하던 19세기말까지,
캔버스에 담긴 그림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이야기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희로애락의 감정을 화폭으로 옮기면서 화가는 자신의 그림을 보게 될 당신에게 어떤 마음을 전하고 싶었을까요?
영국 내셔널갤러리에서 온 이 작품들에 대한 감상이 당신의 마음에 오랫동안 남아있기를 바랍니다.”
전시회 별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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